바람이 불어도 좋다. 어차피 부는 바람이다. 어디서 일어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바람들, 그 위에 인생이 떠있는지도 모른다.
(천경자 - 자유로운 여자, 집현전, 1979)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 천경자는 1924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냈다. 이후 1941년 동경에 있는 여자미술전문학교(현 여자미술대학)에 입학하여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외조부와 외조모를 그린 <조부>, <노부>로 조선미술전람회에 연달아 입선하면서 그 이름을 알렸다. 그녀는 동양화가임에도 밝고 선명한 색채를 사용하면서 시대를 앞서갔고, 한국 예술계의 이목을 끌었다. 한 때는 일본에서 공부해서 왜색물이 든 게 아니냐는 비난이 일기도 했으나 그녀는 이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했으며, 해방이후 한국 미술 화단의 주요 작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천경자의 삶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 이후 기울어가는 가정 형편에 동생과 아버지의 병세가 악화되어 죽음에 이르렀고, 결혼은 두 번이나 실패로 끝이 났다. 그녀는 풍파에 맞서기 위한 탈출구가 필요했고, 붓을 잡고 펜을 들어 자신의 삶에 맺힌 감정을 풀어냈다. 삶에 대한 의지는 강렬한 색채로 화폭에 담겼고, 끊임없는 회고는 정갈한 글이 되어 수필집에 실렸다. 현재에 와서, 천경자 작가를 영원한 나르시스트라고 칭하는 것은 부단히 자신의 삶을 반추하고, 창작을 통해 가감없이 드러내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1954년 홍익대학교 동양화과 교수로 재직, 1955년 작품 <정(靜)>으로 대한미협전 대통령상 수상하고 1961년 국전 추천작가 심사위원으로 선정되는 등 한국 화단의 주요 인사였던 천경자는 돌연 여행을 결심한다. 그녀는 중남미와 아프리카, 인도, 일본 등 다양한 나라를 여행하며 자유로운 시간과 공간 속에 창작활동을 이어나갔다. 여행은 단발에 그치지 않고 짧게는 1-2개월, 길게는 반 년까지 이어졌으며, 자신만의 독특한 기법으로 세계를 화폭에 담았다. 여행 동안의 에스키스는 단순 기록에 그치지 않고 오롯이 작가의 경험과 감각에 의해 작품이 되었고, 그녀가 바라본 풍경엔 그들을 마주하며 느낀 인상과 희열이 고스란히 전해져 있다. 작가는 불확실하고 낯선 타지의 풍경 속에서도 결코 펜과 붓을 놓지 않았고, 그 안에서 비로소 자유와 해방감을 찾았다.
본 신설동역사에는 <2017 Seoul Art Station>의 일환으로, 작가의 눈으로 바라본 미국과 멕시코, 인도, 일본의 풍경 13점을 선보인다. 실제로 작가는 미국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며 장대한 자연의 풍경에서 일상의 소소한 모습들까지 여러 장면들을 작품으로 재구성했다. 또한 남미와 인도 등지를 여행하며 현지에서 사용하는 강렬한 색채를 받아들였고, 이후 색에 대한 틀에서 벗어나 보다 자유로운 색채를 구사하기도 했다. 작가에게 있어 여행이란 영감을 얻기 위한 영원한 탐사이자 끊임없이 자신을 정립해가는 수행의 연속이었고, 마치 바람처럼 전 세계를 타고 흘렀던 작가의 삶을 이제는 그녀의 작품을 통해 비춰 볼 수 있다.
※ 본 작품들은 원본과 기반으로 한 모작으로, 작가 유가족의 동의 하에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