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지공예관
YOOLIZZY CRAFT MUSEUM
유리지는 한국 모더니즘의 1세대 작가이자 추상미술의 선구자인 유영국 화백의 장녀로 조국 광복을 맞이하던 해 경상북도 울진에서 태어났다. 한국전쟁을 직접 경험한 세대로써 정치적·사회적 혼란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녀는 서울에서 대구로 피난을 갔다가 울진을 거쳐 죽변으로 귀향하였고 1955년 5월에 서울 약수동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서울에서 졸업한 뒤 부친의 권유로 서울대학교 응용미술과에 진학한 그녀는 미국 일리노이공과대학에서 뉴 바우하우스의 미학을 배우고 돌아온 민철홍 교수를 만나면서 공예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당시 서울대학교의 교과과정에는 디자인과 제작의 협업작업으로 이루어지는 ‘공예미술’을 2~4학년 과정으로 운영하고 있었고 유리지는 지도교수의 지도아래 금속 혹은 목공예 작품을 제작하였다. 그 후 서울대 대학원에 금속공예 전공이 처음으로 개설되던 시기에 첫 입학생이었던 유리지는 1969년 제4회 대한민국상공미술전람회(약칭:상공미전)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한 이후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하면서 보다 체계적인 금속공예 기술과 조형방법론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1974년 미국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유학을 간 유리지는 템플대학교 타일러미술대학 대학원에 입학하였다. 유학을 가서도 그녀의 작품활동은 계속되었고 펜실베니아주립대학에서 후원하는 펜실베니아 아트 페스티벌(The Central Pennsylvania Festival of the Arts)에 출품하여 공예부 수석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1977년에 이르러 국내로 돌아온 유리지는 귀국개인전을 통해 국내에 알려지지 않았던 공예기법과 기술로 인해 큰 주목을 받았다. 이 후 1978년 제 27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약칭:국전)에서 문화공보부장관상을 수상하고 1980년 제 29회 국전에서는 만 34세의 나이로 국전 추천작가가 되었다. 같은 해 제 2회 개인전을 통해 금속공예의 미적 표현가능성을 확고하게 넓힌 이래로 그녀는 모교의 미술대학 응용미술과 교수로 부임하여 작품활동과 동시에 후진양성에도 기여하게 된다. 유리지는 한국 금속공예에 관하여 다각적인 주제의식을 표현하여 초창기 과도기적 금속공예의 현대적 발전에 초석을 마련하였다. 그녀는 1980년경부터 견고한 금속을 시적인 풍경으로 형상화시켜 순수한 추상적 조형물로 표현하였으며 공예의 실용성과 심미성의 경계를 넘나들며 한국의 현대금속공예의 조형적 표현가능성을 확고하게 넓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