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람안내
시간: 10:00-18:00
입장료: 무료
일, 월, 공휴일 휴관
부대시설
세미나실
안내
T: 02-588-5642
W:
http://www.hanwon.org
미술관 소개
(재)한원미술관은 한원그룹 하동환 명예회장(전 동아자동차 창업자)이 개인 사재를 출현하여 설립한 제 1종 전문미술관입니다. 1993년 11월 한국 미술의 고른 발전과 일반 공중의 문화향유 증진 및 문화교육에 이바지 함을 목적으로 재단법인을 설립하고 같은 해 12월 개관하였습니다. 지원이 필요한 미술 분야의 전시와 연구라는 설립취지를 바탕으로 구상화 중 특히 풍경화 분야를 시작으로 하여 미디어, 한국화에 이르기까지 한국 미술계의 균형있는 발전을 위하여 소신있는 전시와 연구를 목표로 20여년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지켜오고 있습니다.
소장품 소개
작가미상(傳최북) - 먹
31x50cm, 조선 18세기
최북은 정선의 진경산수를 이은 국화풍의 작가이다. 호는 호생관(豪生)이다.
이원희 - 풍경
캔버스에 유채, 145x112cm, 1992
시골 스레트집 지붕을 이원희(1956~ )만큼 잘 표현하는 작가는 드물다. 그는 우리의 자연이 갖고 있는 빛과 공기의 특유한 맛을 놀랍도록 실감나게 표출한다. 그의 풍경은 언제나 흙이 기조를 이룬다. 흙을 일구는 풍경이라고 표현해도 지나치지 않을만큼 흙의 정감과 고향에 대한 아늑함이 따뜻하게 펼쳐져 있다.
이선우 - 상
수묵담채, 130x120cm, 1989
헐리기 직전의 건물, 특히 철거를 앞둔 초췌한 모습의 건물은 초라한 삶의 현장이다. 80년대 중반부터 이러한 소재에 관심을 보여 온 이선우(1958~ )는 단순히 보았던 사실의 묘사를 넘어 자신의 존재가치를 투영시키고자 한다. 엄격한 소묘력으로 묘사된 풍경은 고적하고 엄숙한 분위기의 감정을 전달한다.
유치봉 - 산수
한지에 먹, 70×40cm, 19세기
조선후기의 화가인 유치봉(兪致鳳, 1826~미상)은 산수화를 즐겨 그렸으며 전서(篆書)와 예서(隷書)를 겸하여 잘 썼다고 전해온다. 호는 하산(霞山)이다.
오용길 - 춘경
수묵담채, 173x225cm, 1991
오용길(1946~ )은 따뜻한 시각으로 자연과 풍경을 관조한다. 가깝고 먼 거리의 여러 관점을 본 그대로 정확하고 정직하게 묘사한다. 산과 수목, 언덕, 가옥, 마을, 강물 등으로 엮어지는데 이는 자연스러운 구도 위에서 이루어진다. 포착된 사생풍의 현장감은 어떤 생략이나 변용 또는 과장 등으로 위장하지 않는다. 만들어진 의도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철저히 사실주의 실경으로 펼치는 것이 오용길의 풍경이다.
박상옥 - 서울의 아침
유채, 58.5x104.5cm, 1959
일정 거리를 두고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박상옥 (1915~1968)의 그림에서 발견할 수 있는 특징이다. 특히 한가한 광경이나 공간을 그릴 때는 좌우상하의 등장물 배치와 중간 공간을 둥글게 비워두는 구도 방법은 자주 등장하는 특징이다. 이것은 우리나라 근대 서양화가들이 흔히 사용한 구도인데, 박상옥은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특별히 정형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은 정적인 관조의 태도는 훗날 현실 감각의 결여라는 말로 비난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사물을 조용히 바라보려는 근본 태도에 비추어보면 단순히 미적 유희에 빠진 나태함으로 평가하기에는 적당하지 않다.
박대성 - 서설
먹, 94x125cm, 1988
박대성(小山, 1945~ )의 실경산수는 미술사적인 관점에서 조선후기의 정선이나 김홍도의 진경산수화파의 발전으로 본다.
그는 순백의 바탕을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그 위에 흙빛의 막을 만들어 화면 전체가 퇴색한 듯한 기분을 준다. 이는 흰 빛에 있는 물질을 걸러내는 효과와 먹이 번지지 않게 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거친 붓자국의 세밀한 묘사와 사물의 대담한 생략은 설명에 치우치지 않는 대상의 요약과 시각적 밀도를 동시에 보여준다. 이러한 회화의 바탕 위에서 지금까지 실경산수의 일반적 유형에서 맛볼 수 없는 감동을 자아낸다.
문봉선 - 동리 Ⅰ
먹, 아크릴, 108x180cm, 1988
문봉선(1961~ )은 80년대의 도시풍경, 90년대 산 시리즈에서 먹의 힘찬 에너지를 추상표현적인 형태로 그려나갔으며 2000년대 접어들며 먹의 추상성이 강화된 모던한 풍경을 구사하였다. 먹의 변용을 추구하면서도 전통의 근간을 잃지 않으며 현대 수묵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개척하였다고 평가된다.
김창열 - 물방울
캔버스에 유채, 69.5x59.5cm, 1974
김창열(1929~ )은 1950년대 한국추상미술운동을 이끈 핵심인물로 지난 40여년간 파리를 중심으로 국내외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물방울을 소재로 동양의 정신성과 서구의 기법을 접목시킨 작품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1996년 프랑스 문화훈장을 수여하였다.
197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그의 작품에 표현의 중심이 된 물방울 그림은 시기별로 변화의 양상을 보이는데 1980년대에는 문자가 더해지고 1990년대에는 화포나 종이 대신 나무나 모래 위에 물방울이 그려지기도 하였다. (재)한원미술관 소장품은 1970년대 초 본격적으로 물방울이 그의 화폭에 등장하던 시기의 주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김규진 - 묵죽
한지에 먹, 175×27cm, 20세기 초 족자
해강(海岡) 김규진(1868~1933)은 어려서부터 외삼촌인 서화가 소남(小南) 이희수(李喜秀)에게 글씨를 배우고 18세에 청(淸)나라에 유학하여 10여 년간 서화를 연구한 후 귀국하여 영친왕(英親王)의 사부(師傅)로 서법지도를 하였다. 1913년 우리나라 최초의 종합적인 화랑인 고금서화관(古今書畵觀)을 개설하였고, 1915년에는 서화미술연구회를 창설하여 후진 양성에 힘썼다. 서예는 오체(五體)에 모두 능하였으며 중국에서 공부한 대륙적인 필력과 분방한 용필(用筆)로 주목을 끌었고, 특히 조선 말기 묵죽(墨竹)의 대표자로 여러 종류의 대나무를 골고루 그렸다.
무성한 잎이 많이 달린 좁은 왕죽(王竹)이 특징적인 이 〈묵죽도〉는 죽간을 처음부터 끝까지 윤묵(潤墨)으로 곧게 뻗어 올려 대나무의 곧고 강직한 인상을 강조하였다. 대자(大字)와 묵죽(墨竹)이 특기였던 그는 담묵(淡墨)과 농묵(濃墨)을 적절히 사용하여 대나무의 모습을 담고 있으며 그의 묵죽화들은 짙은 문기(文氣)를 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