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 우드는 어딘지 모르게 불길한 회화를 통해 모든 것이 적절히 괜찮고 지리멸렬한 동시대를 표현한다. 예를 들어 우드는 고풍스러운 빈티지 사물, 젊은 세대가 열광하는 사치품, 성적인 은유, 스스로 겪은 이상한 순간을 집요하게 관찰하면서 자신의 동기를 추적해 그것을 회화로 종결한다. 우드가 그리는 대상은 고귀한 전당포에 놓여 있을 법하고, 소유욕과 함께 수치심을 자아내며, 관능적이지만 측은하다. 그와 연루된 사건은 사실이라 믿기에도 밈(meme)이라 확신하기에도 미심쩍은 뒷맛을 남긴다. 어둡고 저속한 농담을 내포하는 우드의 화면은 익명의 DM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현실과 짧게 출현하는 망상 사이를 떠돈다. 이런 그리기는 너무 많은 선택의 가능성, 각종 극단주의가 가벼운 독감처럼 번지는 오늘의 불안감을 표상하며, 다양한 문화 코드에 뿌리를 둔 미술사의 모티프를 창의적으로 활용해 낸다.
동시대 회화로서 우드의 작품은 초현실주의와 결합한 새로운 리얼리즘의 전조를 보여준다. 그는 상징으로 가득찬 사물·사건의 충만한 잠재성을 예민하게 벼린 개인의 정동과 함께 다룬다. 일반적으로 초현실주의는 화자의 내면을 지배하는 무의식에 집중하면서, 현실과 멀어진 잠재성의 혼돈으로부터 특수한 기제에 의해 억압된 내용을 발굴하려 한다. 그리고 그것을 구조적인 심상의 진열장에 넣어 전시한다. 반면 우드는 도처에서 발견하는 상징을 돌연 냉담하거나 무방비한 태도로 도상화한다. 우드는 헬레니즘, 고딕, 바로크 같은 고전 양식을 지나칠 정도로 많이 소환하기 때문에 종종 그 태도는 은폐된 무의식이나 신비주의가 아니라 과다함으로 인해 미끄러진 숭고에 맞닿는다. 불현듯 화가를 습격해 정서적인 위해를 가하는 사물·사건은 기후 위기나 문화적 퇴행, 미술 제도와 정치적 올바름의 공회전과 같이 그가 겪는 삶의 토대에서 비롯하며, 무엇보다 그러한 물질적 배경이 초래하는 이미지와 양식의 과잉에서 자라난다. 이렇듯 우드의 회화는 좌절된 개인의 무의식을 넘어 화가와 외부 세계의 촘촘한 상호작용으로 인한 도약과 실패를 독자적인 양식으로 재창안한다. 그에게 관찰, 분석, 정동의 표현은 전시 제목이 뜻하는 바처럼 1인칭의 심리적 시점을 투영한다는 점에서 글쓰기와 유사한 효능을 갖는다. 그가 진지한 태도로 임하는 블로깅, 작곡, 뮤직비디오 연출은 (초현실주의자들이 좋아하는 꿈의 은유를 비틀어) 일종의 렘(REM) 수면처럼, 또는 자각몽처럼 회화의 근거를 뒷받침한다.
우드가 구사하는 리얼리티는 형상과 표현에 입각하는 회화가 더욱 급진적인 미술로 갱신될 가능성을 열어준다. 그의 그림은 역사적인 유럽 회화─14세기 중세 회화에서 19세기 신고전주의 구상회화까지─를 폭넓게 참조하는 동시에, 기술적으로는 표면을 흐릿하게 처리하거나 필터를 적용하듯 일정한 조도를 유지하고, 무거운 질감의 벨벳을 재료로 사용함으로써 특유의 ‘시대착오적’인 분위기를 조성한다. 회화가 즉물성에 기울이는 관심은 최근 유의미하게 나타나는 미술의 경향이다. 우드는 이것을 사물·사건의 위상에 대한 탐색, 나아가 오늘날 무언가를 그리는 것의 의미에 관한 탐색으로 이어간다. 결과적으로 이 실험은 회화를 내용이나 형식, 차원이나 표면 중 어느 하나의 문제로 환원하려는 시도에 혼란을 가하고, 회화의 질서를 파괴하거나 ‘확장’하는 데 전념한 지난 세대로부터 이 시대의 그림을 멀어지게 한다.
《I Like To Watch》
이시 우드
기간
2023.9.7.(목)―11.12.(일)
장소
일민미술관 1, 2, 3전시실 및 프로젝트 룸
주최
일민미술관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현대성우홀딩스, 한강주조
관장
김태령
책임기획
윤율리
기획 및 진행
일민미술관 학예팀(최혜인, 백지수, 윤지현, 김진주, 유현진, 이지우, 하상현)
홍보
박세희
행정 및 관리
최유진, 이예란, 박서영, 정이선
그래픽 디자인
페이퍼프레스
공간 조성
석운동
운송 설치
현대 ADP
번역
김지선
사진
서울특별시, (사)서울특별시미술관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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