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성질은 보편적이다. 그러나 시간을 이해하는 감각은 불완전하고 불분명하다는 점에서 예술가는 자의적이고 특수한 체계에 따라 시간을 다룬다. 정지한 상태의 차가운 정동을 다루는 미술은 관념과 인식 양면에서 시간을 재료로 포섭하며 변화를 겪었다. 시간에 기반해 미술이 고안한 여러 요소─소리, 비디오, 퍼포먼스의 효과를 연구하고 이를 인지하는 방식을 탐구하는 오민의 실험은, 시간에 대해 확립된 보편의 발상을 넘어 사건과 장소로 수렴하지 않는 구조적인 상태를 가시화한다. 요컨대 그는 기악 연주자로서 쌓은 경험을 토대로 음악적 수열이나 악보의 체계에서 발견되는 형식을 새롭게 조직하고 감각 정보로 변환하며, 때로는 예술작품을 지배하는 근본적인 질서와 동기를 의심한다.
오민은 시간성에 기대어 자신의 재료를 재구성한 결과를 ‘시간 기반 설치’(Time based installation)라 부른다. 시간 기반 설치는 등장인물의 목소리, 주변의 소음, 스태프의 움직임, 카메라의 이동, 편집 방식 등 작품 내부의 요소와 스크린 외부의 형식을 함께 다룬다. 음악의 구조를 빌린 작가의 여정은 단선(monophony)에서 다선(polyphony)으로, 다시 다선의 확장(homophony, heterophony)으로 이동하며 선율 이후의 형식을 탐색해왔다. 이번 전시는 그 연장에 놓인 덩어리 감각을 재료가 배치된 선형의 질서, 완결된 작품, 직선의 시간 구조 바깥에서 상상하며 이것을 ‘포스트-텍스처’라 규정한다. 포스트-텍스처는 음악사의 규범적 선율 조직인 ‘텍스처’에 비견해 여러 정보가 동시에 배열 및 지속되는 과정이자 결과다. 달리 말해 텍스처가 형식과 내용의 위계에 따라 하모니를 이루는 노래의 감각이라면, 포스트-텍스처는 관습에 의해 의미를 생성하지 않는 소리인 비(非)노래의 감각이다.
3개의 채널로 이루어진 신작 〈폴디드 Folded〉는 56초 단위로 짜인 16개 장면에서 개별 재료가 변화하는 모습에 주목해 순행하는 시간의 방향을 뒤집고 각 채널 사이에 일어나는 작동을 비교한다. 강연 형식의 〈포스트텍스처 Post-Texture〉는 오민의 기존 작업과 여러 참조 대상을 아울러 확장된 텍스처를 감각하는 방법을 관객에게 구술하는 일종의 악보다. 전시 제목 《노래해야 한다면 나는 당신의 혁명에 참여하지 않겠습니다 If I ought to sing, I don’t want to be part of your revolution》는 일상의 춤과 정치적 대의 간의 위계를 부정한 무정부주의자 에마 골드만(Emma Goldman, 1869─1940)의 말을 변형했다. ‘춤을 출 수 없다면’이라고 시작한 골드만의 문장을 ‘노래해야 한다면’이라고 바꿔 말함으로써 음악의 규범을 흩트리는 포스트-텍스처의 시도를 설명한다.
오민의 시간 기반 설치는 작품 내부에 구조화된 시간성뿐 아니라 작품 바깥에 위치한 시간과 만나 다중의 시간 감각을 구현한다. 여기서 그를 특징짓는 주요 형식─정밀하게 동기화된 멀티채널 프로젝션이나 ‘접힌’ 영상 구조는 시간과 시간이, 혹은 형식의 자족성과 재료의 자율성이 맞부딪히는 접합 부위에 물리적인 긴장과 이완을 만든다. 이러한 특성은 작업에 내재한 시각 형태를 작업의 형식으로 작동시키려는 그의 의지에 부합한다. 오민에게 디자인은 단순히 체계나 외피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작품이 내용 다발의 총체로 환원될 가능성을 차단하는 형식의 집약이다. 예컨대 오민의 디자인은 과거의 작업에서 강도 높은 편집 규율, 개념적인 그래픽 체계, 매끄럽게 다듬어진 등장인물로 발현되었다. 이번 전시는 포뮬러가 개발한 서체 ‘오민’, 작가의 강의를 상연하는 모니터, 공간을 채운 보이드(void)를 통해 그의 형식 실험을 연장한다. 내용의 지시가 형식을 맴도는 빈 장소에서 작품과 관객은 동시성이 교차하는 미결정의 상태에 다다른다. 이 과정에서 포스트-텍스처는 점차 불균질한 덩어리에 가까워진다.
기간
2022.8.23.(화)―2022.10.2.(일)
장소
일민미술관 2, 3전시실 및 프로젝트 룸
주최
일민미술관
후원
현대성우홀딩스, 동성케미컬
참여작가
오민
관장
김태령
학예 연구
백지수
진행
김진주, 유현진, 한수진
교육
장서영
홍보
최윤희, 박세희
행정 및 관리
최유진, 신영원, 신혜준, 정이선
협업
포뮬러
사운드
홍초선
미디어 설치
멀티텍
가구 제작
석운동
번역
김지선
관람시간
화―일요일 오전 11시―오후 7시
매주 월요일 휴관
관람료
일반 7,000원(학생 5,000원, 만 24세 이하 학생증 소지자)
* 사전예약 없이 관람 가능
도슨트 프로그램
수, 토, 일 오후 3시, 각 회 40분 소요, 현장참여
본 사진은 (사)서울특별시미술관협의회에서 서울시 보조금을 지원받아 촬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