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은 기념비로서 재현의 의무와 형식에서 해방된 이래 사실주의 미학과 미니멀리즘의 흐름 속에 보수적으로 이원화되었다. 한국의 경우 90년대 중반부터 포스트모더니즘이 개념적 설치미술의 부상을 이끌었고, 주제지향적인 국제 이벤트가 성행하며 탈장르화, 비물질화의 경향이 조각의 존재론적 입지를 약화시켰다. 한편, 새로운 광학 장치나 이미지 처리 기술을 앞세운 디지털아트가 주류 시각예술의 분과로 편입되자 조각은 점차 다양한 혼종으로 변화한다.
《나를 닮은 사람 The Other Self》은 이처럼 조각의 근원을 의심하고 해체하기를 갈망한 동시대 미술의 토대 위에서, 역설적으로 조각의 정체성을 재고하는 권오상과 최하늘의 2인전이다. 권오상은 2000년대에 진행된 매체적 변화와 미술 장르의 융합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조각의 외연을 확장한 작가다. 그의 사진조각은 내부를 비운 표면이나 가벼운 산업재로 만든 골조 위에 사진을 이어붙이고 투시와 시점을 교란하는 방식으로 조각이 매인 과거의 관습에서 멀어졌다. 최근 권오상이 선보인 〈리클라이닝 피규어 Reclining Figure〉(2020-) 시리즈는 표면과 중량의 문제에서 한 발 나아가, 전형적으로 유형화된 사진 이미지를 그 내용과 무관한 지지체에 구겨 넣음으로써 조각에서 재현의 원리가 지닌 불완전함을 극복하려 했다. 반면, 최하늘은 스스로 지지될 수 있는 무엇이든 조각이 된다는 믿음으로 소위 ‘조각적 기법’을 개념적으로 차용해 자신이 성형한 오브제를 조각의 범주로 끌어들인다. 가령 〈새 이름 Always reboot: Ghost〉(2022)은 실존하는 작품 없이 데이터를 원형 삼아 저장되고 소장 또는 전시를 위해 다시 일회성 조각으로 출력되기를 반복한다. 조각이 자립해 존재할 수 있는 미래의 형태, 그리고 다른 차원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최하늘의 시도는 기술적인 현실뿐 아니라 문화적인 현실과 연동되어 다채로운 의미망을 만든다.
두 작가는 조각의 대상이 가진 신체적인 특징에 기반해 가벼운, 때로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 지지체를 만든 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표피를 출력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발상을 공유한다. 그러나 권오상이 주제, 재현, 재료와 같은 문제에서 전통 조각이 강조한 일련의 요소를 명백히 거부하고 일상적 사건과 사물, 산업 재료를 자신만의 조형 어법으로 재해석하는 데 반해, 최하늘은 권오상이 거리를 둔 전통의 참조와 차용으로부터 현실에 유효한 조각 체계를 습득한다. 《나를 닮은 사람》에서 두 작가는 서로의 방법론을 작업에 적용해 비평적인 참조점을 만들고 이를 교환한다. 권오상은 최하늘의 조각을 지지체 삼은 추상조각을, 최하늘은 권오상의 조형성이 변화해 온 행적을 다시 전통의 차원에서 점검하는 번안을 실험한다. 태초의 조각이 지닌 재현과 모방의 충동을 은유하는 전시 제목은 각자 다른 배경에서 매체의 근원에 대한 탐구를 이어온 두 작가의 ‘닮은’ 관계를 함축한다.
라이다 기술, 깊이 카메라, 이미지 알고리즘을 학습하는 애플리케이션의 확산은 누구나 간단한 조작만으로 입면과 입체를 다룰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이러한 동시대의 상황은 언어적 교환과 의미의 연결에 기댄 세계 인식이 만료한 뒤 예술작품의 존재론이 귀환하는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흥미롭게도 컴퓨터 비전(computer vision)에 대한 의존은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는 일을, 또 새로운 비인간 객체에게 세계를 가르치는 일을 ‘덩어리’에 관한 진지한 관찰로 옮겨오며, 이론가들이 사진과 영상에 부여한 철학적 특권을 동시대 조각, 그리고 조각적인 현상의 발현으로 이행시킨다. 《나를 닮은 사람》은 그러한 현실에 앞서 전환과 회귀를 수행하는 두 조각가의 입장이다.
기간
2022.8.23.(화)―2022.10.2.(일)
장소
일민미술관 1전시실 및 로비
주최
일민미술관
후원
현대성우홀딩스
참여작가
권오상, 최하늘
관장
김태령
기획 협력
신은진
학예 연구
윤지현
진행
김진주, 유현진, 한수진
교육
장서영
홍보
최윤희, 박세희
행정 및 관리
최유진, 신영원, 신혜준, 정이선
그래픽디자인
포뮬러
가구 제작
석운동
운송 설치
아트인파인아트
번역
김지선
관람시간
화―일요일 오전 11시―오후 7시
매주 월요일 휴관
관람료
일반 7,000원(학생 5,000원, 만 24세 이하 학생증 소지자)
* 사전예약 없이 관람 가능
도슨트 프로그램
수, 토, 일 오후 3시, 각 회 40분 소요, 현장참여
본 사진은 (사)서울특별시미술관협의회에서 서울시 보조금을 지원받아 촬영했습니다.